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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단어 붙여쓰기 필수) 노년을위한마음공부, 예수성심, 수도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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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대한 교부들의 통찰
          십자가이야기(비타꼰총서5) / 가톨릭비타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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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상거래 상품정보 제공 고시
          도서명 십자가이야기(비타꼰총서5)
          저자, 출판사 이상규 신부 / 가톨릭비타꼰
          크기 15.3×21.4cm (양장본)
          쪽수 378
          출간일 2020-02-26
          출판사 가톨릭비타꼰
          고객평가 0건  ★★★★★ 0/5
          지은이 이상규 신부
          출간일 2020-02-26
          페이지 378
          규격 15.3×21.4cm (양장본)
          교회인가 2020-01-20(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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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출판 가톨릭 비타꼰 이야기 총서 05 >
          The Story of the CROSS
          십자가 이야기


          우리에게 십자가란 무엇인가.

          지기 싫은 짐인가 기꺼이 떠안아야 할 은총인가.

          십자가에 대한 통찰을 교부들을 통해 만난다.


          사형 형틀이었던 십자가를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을 때, 유다인들은 십자가를 스캔들이라 했고, 이교인은 어리석은 광기로 여겼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까지 십자가는 꺼려하는 사형 형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찮고 괄시받던 십자가가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대체 십자가가 무엇 이길래. 그렇게 괄시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죽은 지 2000년이 넘은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대전가톨릭대학교 교부학 교수 이상규 신부가 그리스도교의 스승인 교부들이 바라본 십자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 물음표에 답을 내놨다. 도서출판 가톨릭 비타꼰 이야기 총서 5,「십자가 이야기」를 통해서다. 이 신부는 이 책에서 “과연 십자가야말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가르고 시험하고 식별하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럼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인가. 구원 또한 십자가가 없으면 불가능 하단 말인가. 이에 대해 이 신부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한다. 왜 십자가인지, 십자가에 대한 이상규 신부의 사색을 따라가 보자.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무능과 약함이 드러내는 장소이자, ‘하느님답지 않음’이 여실히 폭로되는 현장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름지기 ‘하느님다움’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유능함을 통해 드러나든가, 아예 십자가를 제거할 만한 강한 힘을 지녀야 할 것이라 여겨서겠지요.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같은 십자가를 두고, 하느님의 지혜와 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1코린 27-28 참조) 이런 역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접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언제 가장 강하며, 또 언제 가장 약할까.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뇌리에 남아 맴도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힘이 가장 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사랑을 절절히 해본 사람의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강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을 때는 수치도 굴욕도 없습니다.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랑을 하게 되면 지혜도 현명함도 냉철함도 우아함도 잃게 됩니다.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지요. 확실히 사랑은 약자로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어리석은 사람’(Amantes amentes sunt)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성과 논리가 작동해서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라틴사람들마저도 “하느님이 사랑에 빠지시면 현명함을 상실하신다”(Amare et sapere vix Deo conceditur)고 말할 정도입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이 사랑에 빠져 하느님다움을 잃어버린 사건입니다.- (본문 중에서)


           -모든 본질은 오직 그와 반대되는 것을 배경으로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가장 ‘당신답게’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재를 드러내는 십자가와 당신의 존재를 무너뜨리고 급기야 사라지게 하는 죽음이야말로 ‘당신다움’의 공현(Epiphania)이라고.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때는 하느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을 감추심으로 완벽하게 드러내실 때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어리석음과 약함과 비천함의 상징인 십자가로부터 하느님의 속성, 즉 지혜와 권능과 강함의 본질이 가장 맑고 밝게 드러난다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닐까요. 빛은 어둠 속에서 드러나며,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빛을 발하고, 일치는 분열 한가운데서 그 가치를 뿜어냅니다. ‘밝은 어둠’과 같은 십자가의 신비한 역설에 대해, 성경은 ‘주님의 상처로 우리의 상처’를 없애시며,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의 죽음’을 죽이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으며”,(갈라 3,13)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어 스스로 죄인이 되시고, 또 우리의 죄의 상처를 당신 상처로 낫게 해 주셨습니다.”(1베드 2,24참조)-(본문 중에서)


           -하느님께서 전혀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죄와 저주와 아픔과 상처를 품어 안으셨다는 성경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하느님의 수수께끼는 ‘사랑’이라는 해독기(解讀機)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십자가의 고난도 문법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사랑이 논리나 합리를 뛰어넘는 무모함이라는 것을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사랑은 이성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어리석음이며, 감미로운 아픔입니다. 바로 이 사랑 때문에 하느님은 어리석은 아픔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고통과 어리석음과 약함은 본디 하느님께 속하지 않았으나, 당신 사랑을 달리 표현하실 수 없기에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런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의 아픔은 외부적 사건이 아닌 하느님의 본성이라고까지 말해도 될 듯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상관없는 죄도 사랑 앞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로 나타납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급기야 주님께서는 죄를 짊어진 죄인으로 자처하십니다.-(본문 중에서)


           이 신부는 사랑과 희망,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이해해도 가슴 속으로는 누구나 십자가는 외면하고 싶어하는 법.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나. 이상규 신부는 이런 제안을 한다. 


           -우리의 아픔에 온통 시선이 꽂히게 되면 더욱더 아플 뿐입니다. 아픔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한에서 우리는 끝까지 아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고통과 십자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아픔의 의미를 주님의 십자가에서 찾고, 마침내 그것을 사랑하기에 이를 때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픔이 하느님의 본성이듯, 우리도 아픔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때, 우리는 오히려 강해질 수 있습니다. 즉 십자가를 사랑할 때, 오히려 아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를 쳐다보아야겠습니다. 거기 우리 구원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우리 안에서 규명하고 처리하는 대신 하느님의 아픔과 그분의 십자가에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확실히 인간에게 십자가와 그에 따른 고통은 신비입니다. 어떤 이는 고통으로 세상을 구원하고, 어떤 이는 십자가에 의해 멸망하며, 어떤 이는 십자가로 회개의 길을 걸어갑니다. 먼 옛날 골고타 언덕 위에 세워진 세 십자가의 주인공들이 그러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가운데 놓고 우편의 십자가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고통은 구원을 하던가, 구원을 받게 하던가, 이런 십자가와 고통의 사도직은 얼마나 하느님의 십자가와 비슷하게 되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느님의 십자가는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외아들마저 내어주는” 사랑의 아픔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십자가는 죄인까지 포함되는 모든 인간,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마저 사랑하는 아픔입니다. 이를 교부들은 ‘compassio’라고 설명합니다. 뜻인즉, ‘함께 느끼고 더불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는’ 연민과 자비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했습니다. 죄인을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버림받은 이들과 같아지시려 버림받으시며, 아파하는 이와 함께 하려 아파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상처에 입 맞추어 변화된 우리의 상처는 ‘또 다른’(alter), 제2의 하느님의 십자가가 되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민하고 함께 아파하는 참여와 연대의 장이 됩니다. 하느님의 아픔에 동화(同化, configuratio)된 우리는 형제들의 모든 아픔과 ‘눈길을 끌만한 볼품도 없는’(이사 53,2) 십자가를 함께 짊어짐으로써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때 세상은 십자가를 보며 말할 것입니다. “그들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이사 53,5)-(본문 중에서)



          글을 시작하며

           

          하늘아, 이를 두고 깜짝 놀라라. 소스라치고 몸서리쳐라.” (예레 2,12)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과 모습이 선포되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하느님의 얼굴은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기존에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던 통념이나 상식이 뿌리 채 흔들릴 만큼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하느님의 모습은 어떤 이에게는 말 그대로 복음즉 기쁨과 은총의 놀라운 소식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 스캔들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놀라움은 예수께서 전한 소식을 접한 반응이 며, 복음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하느님이 개입하신다는 징후였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기쁨의 전갈을 받게 되면, 그것을 영접하든가 또는 거부하든가와 상관없이 한결 같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놀람은 하느님을 만날 준비입니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놀람이 있기는 한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마침내 돌아가셨다는 복음의 핵심소식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2000년 전에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놀라고 경악했던 것들이 어째서 무덤덤한 이야깃거리가 된 것일까?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설교와 신학에 이런 놀람의 자극이 있기는 한가? ‘하느님이 죽으셨다는 것만큼 놀랄만한 무엇이 있단 말인가? 신앙 안에 놀람의 타격이 사라진다는 것은 복음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요, 하느님과 조우할 여지가 줄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만큼 우리는 복음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 이야기는 놀람을 되찾아 보려는 일종의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교부들의 문헌 속에 등장하는 십자가와 그를 둘러싼 여러 놀람의 구체적인 원인과 형태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복음으로 유발된 놀람 앞에서 유다인은 스캔들이라 하고, 이교인은 어리석은 광기라고 여겼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에게까지 거북한 동요를 일으킨 십자가의 진면목을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거의 2000년에서 15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요동치게 했던 십자가의 놀람이 아직도 발동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과연 십자가야말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가르고 시험하고 식별하는 기준’(Crux probat omnia)이기 때문입니다. 행여 저의 부족한 깜냥과 노력이 교부들의 지혜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십자가에 대한 묵상에 초대합니다. 졸저가 나오는데 많은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가톨릭 비타꼰출판사 사장 최의영 신부님과 편집을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02

          이상규 야고보 신부







          글을 시작하며 : “하늘아, 이를 두고 깜짝 놀라라. 소스라치고 몸서리쳐라.”(예 레 2,12)


          제1장 머리말 : 십자가라는 걸림돌과 어리석음

          제2장 스캔들의 원인과 1세기 사도교부

          제3장 2-3세기 그리스도교 호교론 안에 나타난 ‘육화와 십자가’의 스캔들(Scandalum Incarnationis et Crucis)

          제4장 2-4세기 반(反)그리스도교적 논쟁가들과 그들의 비난

          제5장 프와티에의 힐라리우스 : 하느님의 힘이자 지혜인 십자가

          제6장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새롭게 제기되는 스캔들

          제7장 아우구스티누스 : 구원을 위한 스캔들과 모범으로서의 스캔들

          제8장 하느님의 육화와 불변성(Immutabilitas) 그리고 수난고통과 아파테이아(Impassibilitas)

          제9장 맺음말 : 어리석고 약한 ‘사랑’과 십자가의 사도직






          지은이 : 이상규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신학을,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교부학 대학교에서 교부학을 공부, 졸업했다.

          아고스티노 트라페 「교부들의 사제 영성」(2005, 분도출판사),「교부들의 성경주해(신약성경 XI) 콜로새서, 테살로니카1.2서, 티모테오1.2서, 티토서, 필레몬서」(2013,분도출판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책으로 「교부들과 함께하는 사색」(2017, 쉐마북스)이 있다.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교부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정하상 교육회관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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